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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마지막 한 사람이 된 여성에 의한 미술과 철학과 광기의 내면 세계를 그린 실험 소설──『위트겐슈타인의 애인』

by 리뷰123 2022.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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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마크슨에 의한 이 '위트겐슈타인의 애인'은 어떤 이유로 지구상에서 마지막 한 사람이 된 여성이 담담하게 그 생활과 과거를 기록해 가는 자전풍 소설이다. '인류 마지막 1인계' 소설이라든지 영화는 그렇게 구분하면서도 누군가가 나오는 것이지만, 본작의 경우 그런 일은 없고 계속 독말이다.

단지, 보통의 자전은 아니다. 판원의 소개에 <미국 실험 소설의 최고 도달점>과 있어 *1 , 최고 도달점인지는, 실험 소설계 쿠마에 스키의 점프와 같이 명확한 계측이(내가 아는 한에서는)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불명한 곳도 있지만, 어쨌든 실험적 소설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하는 것도, 여성은 상당한 교양과 미술적 소양이 있는 인물인 것이 그 말로부터는 엿볼 수 있지만, 수십 년에 이르는 외로운 방랑과 탐색 생활이 두드렸는지, 이미 미쳐 버렸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스페인 계단에서 수백 개의 테니스 공을 굴리거나 17 개의 시계를 알람이 울릴 때마다 하나씩 아르노 강에 떨어지고 17 시간을 보내거나 시간 감각도 이상하게 4 주 전과 수년 이전의 이야기와 조금 있었던 이야기가 모두 따뜻하게 되어 말해져 간다. 드디어 할 일이 없어지면 때때로 집을 태워 모래 해변에 가짜 그리스 문자를 그린다.

그 말은 주체와 객체가 넘어져서 먼저 당연히 쓴 사실을 '○○라고 썼는데, 그건 실수다'라고 부정해 보인다. 설명은 한 문장 단위로 성립되어 있지만, 하지만 어쨌든 혹은 화제가 자주 전환되어 다른 장소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몇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 연상이 연상을 불러, 원래의 화제가 아무것도 모르게 된 곳에서 또 원래의 화제로 돌아와 보인다.

머리는 이상하지만, 이야기의 전환, 연상, 그녀 속에서 몇번이나 말해야 하는 주제의 리듬이 읽고 나아가는 동안에 잡히게 되어 가고, 종반은 문장을 읽고 있다고 하는 것보다 는 거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읽고 있었다. 보통의 연결의 문장은 있을 수 없는, 이미지의 제휴와 같은 것으로 문장이 연결되어 있어, 「이런 문장이 있었는가」라고 쪼그리는 비약과 그것에 의한 아름다움이 있다.

세계에 혼자이기 때문에 인식의 불확실성

보다는, 읽고 있는 동안에 이 그녀의 세계 인식,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 세계에 있어서의 지극히 부드러운 것처럼도 생각해 온다. 예를 들어, 통상이라면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다양한 타인의 세계인식이나 기억에 지지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몇 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어 대량의 데이터를 남기고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기억에서도 「그렇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고, 여행을 하면 많은 사람이 라고 정보가 있어 표지가 있기 때문에, 번역도 할 수 있고, 거기가 어디인지는 곧 알 수 있다. 어떤 책의 제목을 기억할 수 없어도 빨리 검색하거나 사람에게 듣거나 현물을 보면 된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가 인식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세계에 한 명의 그녀 앞에 그러한 타인의 세계인식은 존재하지 않고, 이동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아야후야 에서 에, 꽤 지나고 나서 코린트를 지나간 것을 깨달았다.」 . 즉,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세계에 혼자이기 때문에 인식의 불확정성에 의한 갈등은, 이 책에서는 곳곳 사로잡혀 간다. 예를 들어, '다른 말을 한다면, '안나 카레니나'가 수중에 한 권도 없는 경우라도 역시 그 타이틀은 '안나 카레니나'인 것을 계속할 것인가.  라고 합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저명하기 때문에 그 서명은 확실하다고 확신이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책을 그렇게 기억할 수 있을 것도 없고, 사람이 없어진 세계에서는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쩌면 9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19. 사실은 0이 2개였다.」같은, 자기의 인식·과거의 기억의 변동을 그대로 쓰는 것이 된다.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 세계에서, 그녀는 가능한 한 정확성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론

「논리보다 이미지의 연상에 의해 연결되어 간다」 독특한 이야기는, 내가 한때 문고 해설을 쓴 모리히로히메 『아카메히메의 조해』를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아카메히메가 현시점에 있어서의 모리하카토의 최고 걸작이다 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본작을 정말 좋아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카메 공주의 조해』의 해설의 내보내기는, 『『아카메 공주의 조해』를 처음으로 읽어 마쳤을 때의 감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이 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였다.  이었지만, 본작에서도 똑같은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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